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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세상/아포리즘

잘못된 기억

오늘 어머니와 통화하다가 내 머릿속에 기억된 '잘못된 기억'을 하나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건대,
어린시절 집안에 보이는 도라지, 더덕, 인삼 등을 마구 집어 먹어서
몸에 열이 많다고 여겼는데 그것이 아니란다.
그 이유도 아주 우습다.
집안에 인삼이 돌아 다닐 여유도, 환경도 되지 않았는데 무슨 인삼을 잔뜩 먹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내 기억에는 그렇게 박혀 있다.

어쩌면, 시간순서에 따른 기억만이 결과적 기억이 아니라 시간의 경과에 따른 결과를 바탕으로 역순의 기억도 조성이 되나부다.
즉, 내몸에 열이 많으니 그런 현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수집된 모든 정보(;인삼을 많이 먹으면 몸에 열이 많다)는 모두 열을 내리기 위한 노력 내지는 그 수단으로 집합되어 시간을 거슬러 모든 시점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 기억을 무엇이라고 부를까?

한편으로는 데자뷰deja vue와도 유사 상통하지 않을까한다.
실제적으로 겪어본 적이 없는데도 마치 과거에 보거나, 겪은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한번 이상은 있을텐데
그것이 어쩌면 부모로부터 유전적으로 새겨진 것일 수도 있고,
훗날의 대화 속에서 얼떨결에 비슷한 상황이 되면 과거에 들었던 기억과 연결시켜 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또다른 어린시절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일하시던 곳으로 낮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정작 아버지가 그곳에서 일한 것은 결혼하기 이전이고 그때는 내가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 그 하나이다.
결국, 내가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꿈에서건, 상상 속에서건
내가 겪지도 않은 사실을 마치 사실인양 기억하고, 곱씹으며 사실화한 것이다.

어쨌거나, 몸에 열 많은 내가 올 여름을 제대로 날지 걱정되신 마음에 보약을 지어 주시겠다며 시작한 통화는
내 어린시절의 잘못된 기억 하나를 일깨워 주며,
내 몸의 열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하는 근원적 질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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