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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ng Still

도쿄 소나타 Tokyo Sonata

"그러니까, 관리 외에 무엇을 잘 하냐구요?"
"당신이 이 회사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신을 채용했을 때의 메리트가 뭐죠?"
관리부장이었다가 실직당한 아빠는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그 사실을 숨긴 채, 매일 출근한다.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하던 중 만난 동창.
둘이 함께 구직활동도 하고, 식사초대에 응하기도 하지만 결국 친구내외는 자살해 버리고 만다.
그 충격 속에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하겠다고 나선 가장.
쇼핑몰 화장실을 청소하다 우연히 주운 봉투 속에는 현찰이 가득하다.
망설이던 그는 그 봉투를 들고 길을 나서지만 차에 치이고 마는데...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큰아들은 아무와도 상의하지 않고 미군에 지원해 버렸고 곧이어 해외파병된다.
한편, 학교에서 선생님의 부당한 처우에 바른말로 대들다 미움을 사게 된 막내 겐지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지만 아빠의 반대로 시작할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날, 길거리에서 주운 건반을 갖고 연습하며, 급식비를 내지 않고 피아노 교습을 받던 겐지에게
선생님은 그의 천재성을 보고 음악학교 오디션을 권하지만 겐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엄마는 피아노를 배우라고 하지만 집으로 배달된 편지를 통해 아빠도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갈등이 시작되는데...
한편, 무료하고 따분한 일상 속에서도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위치를 꿋꿋이 지키던 엄마에게도 강도로 인해 위기가 시작된다.
"여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잔잔하게 그려지는 현대 가정의 초상이다.
이미 커버린 큰아들은 한마디 상의 없이 독자적인 판단과 결정을 하고,
어린 아들은 대화가 단절된 가정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도 못하고,
실직했어도 그 사실을 숨기고 가장으로서의 체면만을 생각해야 하는 아빠,
그런 남편의 모습을 알면서도 감싸 안을 수 밖에 없는 아내.
각자의 현실과 전체의 그것이 어려운 시대 속에 소외되어 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음악영화도 아니면서 결말부의 피아노 연주는 흩어진 가족이 하나로 모이는 계기가 된다.
평범한 가정에 찾아온 해체위기를 진지하고 잔잔하게 그려내며 공감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