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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ng Still

엘름스 웨이 5150 Elms way 5150, Rue des Ormes

directed by 에릭 테시어 (Eric Tessier)

영화제작 학과로 진학하게 된 야닉[마크-앙드레 그롱당 (Marc-Andre Grondin)]은 도시로 떠난다.
카메라를 들고 이것저것 찍던 그는 갑자기 튀어나온 고양이를 피하려다 다치고 자전거는 망가진다.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하기 위해 택시기사인 쟈크[노르망 다무르 (Normand D'Amour)]에게 부탁하는데
그의 집에서 도와달라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한남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그런데, 갑자기 쟈크는 야닉을 방에 가두고 총으로 위협한다.

식사를 위해 내려온 야닉이 만난 것은 바로 길거리에서 만난 자폐아 앤과 엄마인 모드[소니아 바숑 (Sonia Vachon)].
모드도 그런 야닉의 등장에 놀라지만 남편인 쟈크의 뜻에 반항할 수는 없고,
반면 딸인 미셀[밀렌 생소뵈르 (Mylene St-Sauveur)]은 오히려 야닉을 죽이려 든다.
그렇게 그 집에 갇혀 하루, 이틀...일주일...하며 시간이 간다.

카메라를 들고 자신이 감금되어 있음을 녹화하고 그 테잎을 길거리로 던지지만 언제, 누가 볼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집은 자폐아인 앤 때문에 모든 문과 창문은 안에서 봉쇄되어 있어 열쇠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던 어느날, 쟈크는 야닉에게 체스를 둬서 한 판이라도 이기면 풀어주겠다고 하는데...


영화는 자신을 '정의' 혹은 '정의를 행하는 사람'이라고 확신하며,
15년째 범죄자, 비도덕적 인간을 죽여온 어떤 정신병적인 남자와 그런 생각에 물든가족에 관한 이야기인데
크든 작든 타인에 대해 불편이나 피해를 끼치는 사람들과 타인을 돕는 사람들,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거기에다, 체스대회 챔피언인 쟈크는 자신이 이길 수 밖에 없는 체스를 이기면 보내주겠다며 내기를 하고
상대적 약자이면서 피해자인 야닉은 부당하면서도 응할 수 밖에 없는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관계를 보여준다.
매일 체스를 두면서도 "몇 수만 더 두면 장군이다"는 권위적인 말 속에 약자는 주눅 들어 가지만 결코 멈출 수 없다.

또한, 쟈크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실현이라는 임무를 이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만
딸인 미셀은 그런 자격이 되지 않자 실망하며 다른 사람을 찾으려 하는 것이고,
지하실에 만들어 둔 미이라들(;체스판의 말) 중 없는 퀸을 보충하려 하는 것이다. 결국 퀸의 자리는 아내 모드가 맡지만.

한편,  모드가 함께 도망치자고 할때, 야닉은 체스를 이기겠다며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체스에는 관심도 없다가 결국 그 게임을 좋든 싫든 응하게 되면서 결국 쟈크에 물들고,
승리를 통해서만 이길 수 있다고 쟈크와 같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또다른 스톡홀름증후군일지도 모르겠다.
그 집착은 모드의 자살 이후 더욱 심해지고, 쟈크가 앤을 죽인 후에도, 감금에서 구출된 뒤에도 병적으로 이어진다.
영화의 그런 결말은 또다른 쟈크의 양산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카메라를 든 영화학도로서의 역할은 감금사실을 알리는 테잎 하나로 끝? 
반면, 체스에 몰두하는 둘의 모습은 마치 신선놀음하듯 환상적인 연출을 하고,
쟈크에게는 크나큰 실패인 체스 무승부로 야닉이 기뻐하는 모습은 사실적이면서도 환희에 차게,
아빠에게 실망을 안겨준 미셀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비현실적으로 표출한다. 

어라! 그런데, 누가 경찰에 신고했대?
미셀의 남친은 미셀에게 얻어 터져 피투성이가 됐고, 야닉과 쟈크는 체스에만 정신 팔렸는데...
행방불명된 미셀이? 왜? 그랬다면 왜 남친을 죽였대? 결국 혼자 살겠다는 것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