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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세상/아포리즘

서복 - 자신의 운명을 늘 생각하던

<2019 블레이드 러너>를 먼저 떠올려 본다.
인간을 대신해 봉사했으나 용도폐기될 안드로이드들이 자신의 삶을 연장시키고자 하지만 결국은 인간을 살릴 수 밖에 없는 운명.

그렇다.
서복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들을 살려야 할 운명으로 만들어진 복제인간.

(민기헌과 서복의 대화)
- 아무리 그래도 남는 시간에 하는게 있을거 아냐?
아무것도 안 해?
- 계속 생각해요.
- 뭐?
- 내 운명에 대해서.


영화는 진시황제의 명을 받고 불로초를 구하러 떠난 서복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외부요인 없이는) 죽지 않는 복제인간과 죽음을 앞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런데, 정작 극중 서복은 불로초를 찾으러 가는 주체가 아닌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인간에게는 불로초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에 서복은 존재와 죽음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민기헌을 대표하는 우리는 회피하고픈 많은 질문들에 어줍잖은 답을 한다.
 "영원하다는 건 어떤 거예요?"
"죽는다는 건 어떤 건데요?"
"당신은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에요?" 

-------------------

회사의 안부장은 민기헌을 끌어 들이며 말한다.
무기의 본질은 두려움이야.
무기로 말미암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죽지 않을 수 있는 기술은 죽음을 두려워 하는 모든 인간들 앞에 그야말로 강력한 무기인거지.
사람은 누구나 죽잖아? 바로 너처럼.

그렇게 민기헌은 자신을 살리기 위한 임상시험에 참가하기 위해 서복과 동행하지만 서인연구소에서 고용한 용병들과 회사의 암살시도에 시달린다.

- 내가 왜 위험한데요? 내가 실험체라서? 내가 죽지 않는 존재라서? 사람들 참 어리석네요.
- 그럼 민기헌씨가 나쁜 놈이 아니란걸 내가 어떻게 믿어요?
- 야, 내가 나쁜 놈처럼 보여?
- 좋아 보이진 않아요.

티격태격하던 민기헌과 서복의 대화는 둘만의 대화가 아니라 관객 모두에게 던지는 화두가 된다.

- 그러니까 민기헌씨는 왜 나를 지키려고 하는건데요?
- 내 목숨이 너한테 달려 있거든.

- 너, 빨리 가서 그 주사 맞아야돼, 안 그러면 어떻게 될지 몰라.
- 왜 그렇게 내 걱정을 하세요?
- 뭐???
- 아... 그래야 민기헌씨가 살 수 있으니까?
- 그래,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어. 그러니까 부탁 좀 하자.
- 내가 왜 민기헌씨를 살려줘야 돼요? 사람들은 어차피 다 죽잖아요? 근데 민기헌씨만 왜? 민기헌씨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예요?
-......
- 야, 네 말이 다 맞어. 난 그럴 가치가 없는 놈이야. 난 죽어도 싼 새끼야. 그래도 살겠디고 이 지랄하고 있어. 그게 뭐 그렇게 잘못이냐? 그게 그렇게 잘못이야? 그게 그렇게 죽을 죄냐고? 나만 왜? 뭐?
그 ㅆㅂ 나보고 어쩌라고? 야, 말해봐,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네가 뭐야 이 ㄱㅅㄲ야.

- 죽는 기분이 어때요?
- 안 좋지. 상당히 안 좋지.
- 왜요?
- 상당히 안 좋아
- 왜요?
- 왜긴 왜야, 죽으니까 그렇지.
- 그럼 사는건 좋았어요?
- ... 뭐 좋을 때도 있었구 안 좋을때도 있었구. ㅈ같은 때가 훨씬 많았던것 같구... 그러고 보니까 헷갈리네. 내가 살고 싶은건지 아니면 죽는게 무서운건지, 이젠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너무 후회돼.

- 죽으면 정말 잠드는 거랑 비슷할까요?
- 그럴지도 모르지.
- 근데 사람들은 왜 잠드는걸 무서워하지 않죠?
잠깐 죽는건데...
- 그야 다음날 깨어날거니까.
- 그걸 어떻게 알아요?
- 그냥... 그렇게 믿는거지. 아침엔 잠에서 깰거라고.
- 죽는다고 생각하면 두려워요. 하지만 영원히 산다는 것도 두려워요. 전 무얼 믿어야 두렵지 않을까요?
- 슬프면 울어, 울어도 돼.
한달 동안 서복에게서 유전물질을 채취한다는 박사의 말에 민기헌이 그만하라고 하자,

- 가혹하다뇨? 이건 그냥 돼지에서 인슐린을 채취하는거랑 비슷한 겁니다. 서복은 사람이 아니니까. 아시잖아요?

아... 이쯤되면 우리는 정말 안드로이드나 복제인간이 만들어지기 전에 (결과적 가능여부도 불투명한)
사회전체의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인간으로 볼 것인가? 아닌가?
인간의 임의대로 처분해도 되는 것일까?

민기헌이 연구소측 사람들에게 던지는 말은 그대로 미래의 현실이 될 것인데...
- 니들 같은 것들이 영원히 살게 되면 그게 바로 지옥일거야.

서복 또한 말한다.
- 그러지 말지, 그런다고 끝나는게 아닌데.

자기를 둘러싼 폭력과 다툼에 서복은 결국 민기헌에게 자신을 죽여줄 것을 요구한다.
- 이젠 알잖아요, 아무리 무서워도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아니예요?

서복은 마지막으로 말한다.
- 형, 나 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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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찾게 만든다는 사실은 욕망이나 탐욕을 낳고 그것들은 결국 죽음을 거부하고 신神의 영역에 들어가고자 하는 무모함에 다다른다.

그렇게 <2019 블레이드 러너>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처럼 사람을 살리기 위해 태어난 운명을 늘 생각하던, '인간보다 더 인간의 미래를 생각하는' 복제인간 서복을 남겼다.

<건축학개론>이 아닌 '존재의미학 총론' 감독이 던지는 질문들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 두세번봐도 좋을 것 같다.
완벽한 시나리오를 위해 수년간 애쓴 감독의 노고에 감사한다.
동행이 아니라 '공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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