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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ng Still

배틀 포 테라 Battle for Terra

원제原題와 내용을 갖고 생각해 본다.
'Terra를/에 위한/대한 전투'라는 뜻이라고 볼 때, terra(흙, 땅, 대지, 육지 ; 지구)의 뜻을 감안하면 지구를 대체할 새로운 땅을 놓고 벌이는 쌈박질인 셈이다.
그런데, 제목은 battle이지 war가 아니다. 즉, 전쟁보다는 규모가 작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땅을 개척하거나 식민지화 하려는데 전쟁이 아니라니?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려 하는 이들과 그 땅을 뺏으려는 세력간의 다툼이 전쟁이 아니라면 그것은 다소 일방적이어야 하거나 뭔가의 중심 합의점이 있어 좋든 싫든 타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제목은 적절하게 잘 지어졌다.

하지만, 내용의 중추에는 심각한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테라人은 산소호흡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지구인은 산소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산소호흡이 가능하게 해 줄 장치인 테라포머를 테라에 설치하면 지구인은 살 수 있지만 원주민인 테라인들은 모두 죽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극단적으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지구인의 관점에서 본 줄거리>                                          
황폐화된 지구를 떠나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을 찾아 머나먼 행성 테라까지 온 생존자들. 
군대를 파견하여 그들을 생포하여 연구하면서 평의회를 중심으로 테라를 정복하여 지구화할 것인지를 논의하지만
함선(ark)의 산소가 2달 가량 밖에 남지 않은 상황임에도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다.
이에 불만을 품은 헤머장군은 대통령을 비롯한 평의회를 해산시키고
7일이내에 테라를 지구처럼 숨쉴 수 있게 해 줄 테라포머를 설치하며 테라를 무력으로 정복하려 한다.

테라로 파견되었다가 비행선 추락으로 인해 죽을 뻔 했던 짐은 말라의 도움으로 살게 될 뿐만 아니라 
비행선 수리도 하면서 생포된 그녀의 아빠를 찾기 위해 그녀를 데리고 함선으로 온다.
그러나, 비행선을 빠져나와 아빠를 찾던 말라가 모두에게 노출되자 그녀의 아빠는 우주공간으로 빨려나가는 선택을 하고  
짐 또한 위험에 처한 그녀를 로봇 기디Giddy를 시켜 비행선으로 탈출시키게 된다.

테라로 돌아온 말라는 원로로부터 멸망할 뻔했던 자신들의 과거와 평화를 사랑할지라도 침략에는 맞서야 한다는 말에
지구인들은 산소를 필요로 하고 그것이 자신들에게는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금지구역에 보관중이던 자신들의 비행선으로 테라포머의 설치를 막기 위해 함선을 향해 출격하고,
비슷한 시간, 함선에서는 테라를 공격하기 위해 비행선들이 출격한다.

서로의 생존을 위해 테라를 놓고 벌이는 지구인과 테라인들의 싸움은 어떻게 될 것인가?



테라인을 It이라는 중성으로 표현하다 말라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녀를 she로 표현한다는 것은
김춘수님의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것과 같이 의미를 갖는 대명사가 되고, 결국은 의미 있는 미래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복선의 역할이 된다.
하지만, 우리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평화를 깨고 생명을 죽이는 것은 과연 정당화 될 수 있는것이며 공존의 길은 없는 것인가?
그 길은 짐이 테라포머를 공격하며 그의 희생 속에 열어주고, 테라의 원로는 말한다.
"Never lose hope , there are always alternatives."
희망을 버리지 마라.언제나 선택권은 있다. 
그렇게 지구인은 테라에서 산소호흡을 하며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명확하게 기억해야 할 부분이 있다.
지구인은 분명히 침략행위를 한 것이고, 공존의 길을 연 것은 바로 테라인들이라는 것이다.
양쪽 모두 희생이 있었지만 침략 주체로서는 감수해야 할 몫일 뿐인데 평화를 사랑하는 테라인들은 양보하며 공존의 길을 연 것이다.
제발, 더 넓은 땅을 원한다거나 하며 새로운 다툼은 하지 않길....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의 3D 애니메이션은 나름의 감동을 선사한다.
물론 그것은 우리,지구인이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무고한 테라인들의 희생을 막으려는 한 사람의 희생과
양보와 공존을 실천하는 주체인 테라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