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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 패밀리

고등학교 교정에서...

부산동고등학교.
어쩌면, 내 인생에서 보낸 시간들 중, 가장 길다고 느껴졌던 기간이 아닐까?
빨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 되고 싶었다기 보다는
하루는 길기만 하고, 시간은 더디 간다고만 느꼈으니...

입학식날부터 도시락 2개, 토요일은 도시락 1개....
이른 아침에 나가서 저녁10시가 되어서야 하교길에 올랐던 감옥 같은 시간들.
일요일이라고 맘껏 놀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담임선생님이셨던 흑곰샘이 교회 갔다 자칫 들르기라도 했다하면
다음날 바로 "누구누구가 학교 왔더라"며 안 나온 애들 공격하던 그런 암흑기.
우리는 그곳을 빨간 벽돌 감옥이라 불렀다.

그나마, 등교길에 버스에서 내리면 아래에 위치해 있던 여자상업고등학교 애들에게
추근대며 농지꺼리도 하고, 토요일에는 아래 중국집에서 자장면 먹는 낙도 있었으니
그나마 견디지 않았을까.

그런 아련한 기억도 이젠 몇십년의 세월 속에 묻히고,
내 현재를 생각하며 아쉬워 하는 추억에 머물고 있으니 시간의 흐름이란....

그래도, 그때 '뜨는 별에서 지는 별까지'하며 열심히 공부라도 했고, 아직까지 그 지식들을 써 먹고 있으니
입학식부터 고3처럼 공부시킨 흑곰샘의 노력과 강제력에는 감사해야 한다.
(사실, 흑곰샘은 (집에서 쫓겨나거나 별거상태도 아니면서) 매일밤 우리를 감시하기 위해
자장면을 교실로 배달시키며 쉬는시간조차도 감시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매일 그런 생활 속에 갇혀 있었으니 수업시간엔 졸기 일쑤였고, (왜 그렇게 잠이 왔는지...)
영어,수학시간에는 왜그리 읽고 번역 혹은 문제풀기를 시켜대는지 모두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고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우리반의 성적은 학교에서 Top이었고, 전국에서도 두 손 안에 드는 위치였으니
학교에선들 담임선생을 바꿀려고 할 것이며, 그런 우수한 애들을 교체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으니
1학년 때 반친구들 그대로 3년을 보냈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정작 당시의 학력고사에서는 대부분 죽을 쑤었고,
그 결과 흑곰샘은 일단 재수로 무조건 몰고 가는 상황에 이르러 친구들 모두의 반감만 샀지...흐흐흐
결국, 졸업후에도 제대로 찾아뵙지 않는 상태를 초래하고...
(내 성적에 실망하고 정작 재수를 하고 싶었던 나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눈감고 아무곳이나 가는 사태에 이르렀다.
타임머신이 있어 시간을 되돌려 준다면 난 재수를 하고 싶다.)

엉뚱한 반항도 단체로 했었는데,
학력고사 100일전날, 우리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흑곰샘이 없는 틈을 타,
일제히 학교 담을 뛰어 넘었고 해운대에 집결해서 그렇게 가는 청춘을 아쉬워하며
먹지도 못하는 막걸리 한박스를 바라보며 사이다만 마시다 밤하늘의 별 보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난 '술고래'라는 별명을 얻었고,막걸리는 어릴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아직도 즐겨 마신다.)

사진 속 저 날은 여름방학 중의 어느날인데 그날 우리는 공부를 끝내고 농구도 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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