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 앤 웰즈 Julie Ann Wells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시기에 영어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던 나는 해외펜팔을 시작했다.
당시에 조기교육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알파벳은 중학교에 들어가면 배우는 것이어서
미리 알 필요도 없었고, 지금의 기억으로도 학교에서 충분히 숙제를 내 주었다.
그러나, 해외펜팔을 위해서는 당장 영어의 필요성도 있었고 무엇보다 알파벳이 문제였으니...
하여간, 그냥 소책자에 나와 있는 문장중에서 골라 편지 쓰고, 알파벳은 그대로 따라 그렸다고 해야 솔직하면서 있던 사실 그대로겠지...

그렇게 편지로 친구가 된 Julie Ann Wells.
테네시주 Tennnessee에 거주하던 그녀는 첫 사진에서 내 이름을 쓴 피켓을 들고 있다.
난 이 사진을 받아들고는 스타워즈의 레이아 공주와 똑같다고 느꼈고 온동네 자랑하고 다녔다.

무용을 어릴적부터 했고, 응원단 소속에 응원단장도 몇년째 하고 있다했던 그녀의 집은
꽤 부유한 집안이었던지 Julie는 1100불짜리 인형이 여러개 있음도 자랑했고,
지역 신문에 난 기사까지도 오려서 보내 줄 정도였다.
당시에는 해외에서 유입되는 소화물들은 국제우체국에서 미리 열어보고 수취인에게 보내줬는데
어느날 도착한 소포에 내 이름이 새겨진 T셔츠만 들어있고 그녀가 "맛있으니 먹어보라"고 했던 쿠키는 모두 사라진 황당한 일도 있었다.

어느날엔가는, "너희 나라에도 TV가 있니?"하며 물어 왔는데 당시엔 무척 자존심 상해서 과장해서 답장을 보낸 기억도 있는데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AFKN에서도 방영되고 있었던 6·25를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한국은 전쟁으로 피폐해져서 못 먹고 못 산다는 식의 내용이 나왔다고 한다.

먹지도 못한 쿠키, 내 이름이 새겨진 T셔츠 등을 받은 나는 보답으로
한국 전통 캐릭터의 작은 인형들과 엽서를 보내준 것 같은데 Julie뿐만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 Brenda까지 편지를 동봉하며
(무남독녀 외딸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처음엔 선편(;배)으로 편지를 보내다 보니 거의 한달이 걸려야 답장을 받곤 해서
그 답장에 대한 기다림과 조바심으로 나중엔 비싼 요금을 내고 항공편으로 주고 받으면서 시간이 많이 줄어들고 좀더 자주 편지왕래한 것 같다.

영어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던 당시의 내 상황에 비춰 미국애가 쓴 알파벳은 더 곤란한 문제였고, 내가 쓰고 싶은 문장이 소책자에 다 나오지도 않는 것이어서
결국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이때 내 지원군이 된 사람은 당시 대학생이던 외갓집 작은 누나였다.
누나 덕분에 알아보기 어려운 알파벳이 쓰인 문장에 대한 해석이 가능했고, 내가 원하는 답장에 대한 작문도 가능해서
나로서는 한 시름 놓은 셈이었다.

내게는 그저 이쁜 미국인 친구 한명이었지만 소책자나 누나의 도움을 덜 받고 의사표현을 하기 위해
영어공부는 더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중고등학교 시절 독일어를 포함한 외국어는 단연코 반에서 Top이었다.
친한 친구들은 미국에서 답장이 오면 의례껏 같이 돌려보았고
사진이라도 보내 올 때면 온 반을 다 돌고 나서야 그 사진을 다시 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러나,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중학교때보다는 의사표현을 잘 할 수 있었으나,
대학진학을 위해 학교에 얽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편지왕래도 뜸해지고....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한다는 우리 현실을 그녀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한창 연애하고 보다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시기에 소식두절되고 말았다.
어쩌면,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이후에는 독립하는 그들 문화로) 타지로 나갔는지도 모르겠고
이른 결혼을 했을지도....^^

하지만, 내겐 너무도 소중했던 미국인 친구라 간혹 생각날 때면,
최근까지도 인터넷 문명의 혜택을 누려보고자 검색도 해 보지만 찾을 수는 없었다.
구글 등에서 검색하면 검색어에 해당되는 글들이 나오기에 나역시, 혹시라도 그녀가 찾아볼까봐 그녀가 살던 주소를 남겨본다.
Julie Ann Wells
112 Enden Ave. Shelbyville , Tennessee 37160